단풍 서~넛
정전 60년 아! 오성산ㅣ Dan풍 2013/07/19 11:11:00
http://mini.thinkpool.com/ahimsa/1407662 

▲ 지도 클릭하시면 2,200 X 2,836 픽셀로 갈현고개-한탄강(화강) 두물머리 14.95km, 8.21hr 산행궤적을 보실 수 있습니다.

▲ 남한 쪽 한탄강-화강(花江) 두물머리에서 Papa mt(오성산)까지 직선 거리는 12.028km.

▲ 황해남도와 황해북도가 나눠져 있고 해주와 사리원이 각 도의 도청소재지가 되네요. Yellow Line 군사분계선, Red Line은 대득지맥 산행궤적.

▲ 민통선 한탄강, 여기 두물머리 물이 직탕폭포 거쳐 태봉교로 내려갑니다. 승일교~ 고석정도 거치죠. 비둘기낭은 한참 더 가고요.

▲ 포사격봉입니다. 대득지맥 능선에 위치하고 주위 조망이 무척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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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눈내린 청명한 포사격봉이 분단 지역 임을 알려줍니다.

▲ '태극기 휘날리며' 장동건, 원빈이 생각나는 대득지맥 포사격 봉.

▲ 전방 임을 감안할 때 금학산(△946.9) 아래 철원군 동송읍에 솟은 아파트가 무척 이채롭지만, 그만큼 사람이 많이 사는 군사도시인 증거겠죠.

▲ 포사격 봉우리에서 금학산(△946.9)까지 직선거리 약 10.898km

▲ 진행할 x456(右)과 가로재, 김화 2등삼각점이 있는 △587.4(左)- 뒤.

▲ 안테나가 보이는 △587.4 봉(김화)은 25,000 도엽 자체가 없습니다. 김화(금화, 金化) 5만 도엽만 지도상(商)에서 판매하죠.

▲ 철원의 진산은 금학산(△946.9)이 맞는데, 고대산(△831.8)은 철원, 연천 양다리요, 경기도와 강원도에 걸쳐 있습니다.

▲ 고대산(△831.8), 지장봉(△877.4) 등 연천의 산들을 돌보며 GPS 측정이나 연천군민 山-교육, 등로 테크 설치에 힘쓰던 꿀벌님이
자제분 영향?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서 연천 좋은 곳들 탐방하려던 희망이 사라진 게 제일 안타깝습니다.

▲ 금학산(△946.9)에서 오른쪽 철새도래지인 민통선 안 동송면 양지리 토교저수지까지 시야가 터집니다.
앞 → 진행할수록 더 가깝게 다가오겠죠. Panorama 클릭하시면 2,274 X 500 픽셀의 긴 그림을 보실 수 있음.

▲ 오른쪽은 김화(新), 김화 북동쪽 DMZ 한가운데에 있는 舊 김화(금화)는 온달장군, 궁예가 힘을 얻은 곳이죠.

▲ 포진지 표시 뒤로 보이는 동송읍은 소이산- 금학산, 고대산 안부지나 지장봉(△877.4)까지 이어지는 보개지맥을 품고 있습니다.

▲ 삼각점 △428.7을 찍고 다시 포진지봉으로 올라오기는 귀찮은 일이라, 그냥 먼 발치서 확인만 하고 능선 진행합니다.

▲ 2013 추석에 갈 보개지맥 2구간. 한가위에 이 곳이 차가 밀리지 않는 지역이 되어 선택. 각개 산이야 다 연결해봤지만,
지맥이란 개념에서 추석에 갈 텐데, 오고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아 좋더라고요. 2013년 광인님 제안, 설날 해보니 막히지 않아 Good.

▲ 대득 산행 후에 '성제산~안암산~청양리 조엽주막 464번 도로'로 내려오는 코스를 해봤으면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성제산(x471)에서 오성산을 올려다 보고 싶은 이유죠. 오성산 전투의 치열함을 느껴보고 싶고요. 저격능선과 웅장한 오성산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

▲ '산에가면'님이 지역기관장이 아닌 산꾼으로서 산행 안내와 xx회관 뒷풀이 도움을 주셨고, 칼바위님, 밀레님과 말동무.

▲ 포사격봉에서 지능선에 있는 "△428.7을 내려갔다 올라와 말어?" 갈등하는 사이에 배낭 셋이 나란히 지나갑니다. Zoomin.

▲ 4월 초, 감탄사! 입을 벌리게 했던 아침의 눈꽃이 언제 사라질지 궁굼해집니다.

▲ 산행 안내?나 여러 편의를 봐준 지역 기관장님 Garmin은 닿고 닿아 산행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대득 능선 오른쪽. 이제는 新김화(금화)의 진산이 되어버린 △588.0(안암산). 능선 왼쪽 끝자락 위가 화강(花江)과 한탄강 두물머리.

▲ 2013 설날. 차막히지 않는 지역으로 택한 전방 철원. 보개지맥 1구간 소이산- 금학산이후 2구간은 올 추석에 이어갈 겁니다.

▲ x456봉 지나 있는 이 고개가 '가로재'인 거 같습니다. 주변에 마땅히 가로재라 칭할만한 게 없으니까요. 높이는 약 425m.

▲ 587.4(△) 가는 구불 군사도로 보니, 자전거 타기에 딱이더군요. 대득지맥 마지막 구간은 자전거로 하는 게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
싱글이란 용어는 MTB 세계에서는 고수의 반열이지만, 구간 대부분이 군사도로라 자전거 들고 뛰는 멜바, 들바의 싱글 수준은 아닌듯?

▲ 길한 징조, 상서로운 때늦은 2013. 4. 7(日) 서설(瑞雪)에 호랑버들이 눈 벼락을 맞았습니다. ^^

▲ 상고대를 넘어 거의 실물 빙화(氷花) 수준입니다. 호랑버들 수(숫)꽃.

 ▲ 삼각점 △587.4 (김화21, 94년 재설)봉까지 이어진 군사도로. 보면 볼수록 자전거길이란 생각이 드네요.
라이더는 당연히 군사도로 라이딩을 즐길 테지만, 산꾼이 능선 제쳐두고 편하게 군사도로를 따를 수는 없는 거죠. ^^

▲ 봄꽃이 가진 에너지, 생강나무 노란 에너지는 호랑버들꽃과 달리 눈을 녹이고 활짝 피어나 싱그러운 자태를 뽑냅니다. 

▲ 멀리 보이는 건물 뒤 안테나 봉우리가 △587.4봉입니다. 이쯤 어디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합의 pm 12:30.

▲ 이전 막걸리 Time에는 지역 기관장인 산에가자님 지역 특산품 철원 '장안 왕족발' 잘 먹었고, 점심은 칼바위님 집 냉장고
거덜내는 수준의 재료 준비라 거하게 먹고 마셨죠. 오성산 조망과 점심이 KeyPoint ^^. 눈꽃이 보긴 좋아도 점심자리는 뽀송뽀송이 좋습니다.

▲ 민통선 철새도래지인 토교저수지 넘어 왕재봉(△608) 왕재능선을 가늠해 봅니다. 정연리는 금강산철길이 통과하는 동네였고요.

▲ DMZ 조망이라는 관점에서 대득 마지막 구간 중 삼각점 △587.4봉 에서 관조하는 그림이 정말 멋집니다. 한북지맥(北) 오성산이 손에 잡히죠.
△717(서방산) x689(두류봉) 별유봉(x380) 세 봉우리는 군사분계선 넘어 북녁 땅. 계속 진행, 두물머리 합수점능선 갈림봉에서 더 또렷할 듯.

▲ 한탄강 넘어 민통선 지역인 정연리는 금강산으로 기차가 다녔던 철길마을. △587.4 조망터에서 Zoomin했죠. 이곳 조망터도 예전엔 민통선.

▲ 이북 쪽 한탄강 오른쪽으로 Papa산(아버지산, 오성산), 벽력암산(x640), 장자산(△802)이 조망됩니다.

▲ 김화 2등 삼각점을 영접하려면 조망터에서 "뒤로 돌아" 펜스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되죠. '산에가면'님 안내. 알려주지 않았으면 지나칠 듯?

▲ 김화 21 (94년 재설) △587.4 2등 삼각점입니다. 비슷한 높이 △588.0(안암산)에도 5만 도엽 김화 삼각점이 있습니다.

▲ 대득 산행하고나니, 한가한 때, 조망 좋을 때, 성제산~안암산~청양리 조엽주막 464번 도로 내려오는 길도 가봤으면 하는 욕심. 성제산이 허락된다면? 대충 그려보니 11.7km.

▲ 서방산(△717)이 새벽에 온 눈 덕분에 Zoomin 하기 딱 알맞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데로 한다면 북쪽 괴뢰의 서방OP, CP가 있는 거죠.

▲ 김화 2등 삼각점 봉 △587.4에서 약 350m 내려오면 군사분계선 일대를 관측할 수 있는 관측소가 있죠. 현재는 무인관측소.

관측소 옆(右)에 H장이 있어서, 연희동 전통이 각하 취임 후에 다녀간 흔적을 남겨 놓았더군요. 겨울에 가면 환상 조망일 듯?

▲ 산 꼭대기에 이렇게 멋진 건물을 지으려면 여러 사람이 고생했을 듯 싶네요.

▲ 이 곳 관측소에서 비박을 하면 어떨까? 유리창이 둘러 있고, 사람이 없어서 하룻밤 제지할 경직은 없어 보입니다.

▲ 서방산(△717), x689(두류봉)은 같은 능선에 위치하고 별유봉(x380)은 북쪽 지역 한탄강에 접해 있습니다. 두류봉 오른쪽 뾰족봉이 별유봉.

▲ 드디어 오성산의 자태가 드러나는군요. 6.25 휴전 협정 당시 수많은 국군과 미군, 북한군 특히 중공군이 많이 전사한 장소입니다.

▲ 안암산(△588.0)이 보는 각도에 따라 왔다갔다 헷갈립니다.

▲ 남대천이 예전 이름인 화강(花江)으로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하토동 내려와 중토동에서 Taxi 남대천교 지나 xx회관에서 뒤풀이 했죠.

▲ 막내 격인 밀레님 포함 4사람입니다.

▲ 각하 유시(諭示)

▲ 약간 역광이 있네요. 누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산에가면님과 칼바위님 은근슬쩍 노출 ^^ 국방부 잡혀갈 거 같으면 연락하슈 ^^

▲ 사진 오른쪽 3/4 지점 봉우리, 끝봉우리=벙커봉. 벙커봉 뒤로 화강(花江)과 한탄강 두물머리.

▲ 뒤돌아본 '전통 각하 유시석(諭示石)- 左 관측봉', 우(右) △587.4 김화 21, 94년 재설 삼각점봉.

▲ 뗏장이나 교통호, 위장망 재료인 그늘사초가 노란꽃을 피웠네요. 84년 T.S 나가보니 US Army는 5층 건물 높이 막사에 가벼운
경량 위장막이 위압적이고 압도적이라, 겨우내 사초로 만든 무거운 위장막이 부끄러워지는 순간? ^^
건조한 풀밭이나 산지 숲속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초꽃을 가만이 들여다보니 작고 앙증맞기가 이를데 없습니다.
노오란 사초꽃은 여기 관측봉에서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남.북한 대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 휴전, 정전 60주년 아! 오성산! ▣

    승산이 있다고 주판알 계산을 끝낸 북한이 6.25 남침 이후 미군(UN군)의 공격을 중공군의 도움으로 선방한 북한에서 '전승절(戰勝節)'이라고 부르는 정전협정 체결(7월 27일)일이 다가왔습니다. '김정은' 앞에서 대대적인 전승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하죠? 지난 6월 2일 김정은이 오성산을 찾았을 정도로 오성산은 우리나 북한에게도 무척 중요한 산입니다. 7월 27일(土)이 우리에게는 휴전. 종전, 정전 60주년입니다. 그들이 이겼다고 우기는, 군사분계선 북한 쪽 DMZ 왕재봉(△608)- 전승봉과 대비되는 건 '저격능선 전적비'가 있는 대득봉북능선 화강(花江) 부근이나 백마고지, UN기념공원 정도가 아닐까? 38선 이북인 설악산과 고성, 철원을 회복해서 실질적 땅따먹기에서는 한국이 이긴 게임이지만, 물량대비, 고효율을 투입 저생산이 나온 걸 계산하면, 북한 위정자들이 이겼다고 우기는 것도 생각해 볼만? 6.25 여러 전투중 종전 60주년을 맞아 오성산 전투를 살펴보며, 지난 대득지맥 산행을 떠 올립니다. 네트워크에 오성산은 너도 나도 1,061m로 기록하죠. 국토지리원 금화(김화) 5만 도엽에는 x1,040인데 도엽은 항공사진과 GPS 자료 등 여러가지를 취합 만들어지는 것을 감안, 오성산을 x1,040로 표기합니다.

    노란선 = 군사분계선 MDL. 군사분계선 위-아래로 각 2Km의 공간 DMZ(비무장지대)을 두었지만 유명무실이죠. 북측이 기존 철책을 MDL 쪽으로 앞당겼으니, 우리도 대응 차원에서 추진철책을 펴고 있으니까요. 군사분계선 북쪽 위 평강시(군)는 고구려 평강공주의 바보신랑인 온달이 군대를 지휘한 곳으로부터 지명이 유래되었습니다. 당시 온달장군은 이곳 철원에서의 기세를 몰아 한강까지 단번에 진출, 백제의 교두보인 아차산(중랑구)까지 점령했죠. 한강(하남)을 바라다 보는 아차산을 점함으로서 이후 싸움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합니다. 오성산도 마찬가지, '천하의 요새' 오성산을 차지하는 쪽에서 지형학적 절대 우위에 서게 됩니다. DMZ 한가운데에 후삼국시대 철월을 도읍으로 태봉국을 세웠던 궁예 도성이 있고, 현재 궁예도성터는 군사분계선 MDL이 정확하게 양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군사분계선(MDL- 가운데 선)이 도성을 가로로 양분하고, 경원선 철도가 다시 세로로 갈라놓는 모양새. 부하인 왕건에서 쫓겨 나라를 내어주고 다시 1,000년이 지난 지금 궁예도성에 갖힌 스토리가 써집니다. 미무장지대 舊 김화(金化)는 임란 당시 왜군의 북진길이요 병자호란 때는 청군의 남진길이었죠. 1636년 청 장수 누르하치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이곳 김화에서 우리 관군과 의병 2,300명 모두 전사케했습니다. 서울과 평양 사이에서 지형적으로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 철의 삼각지(iron triangle) 철원-평강-김화입니다. 이곳 오성산 일원이 중요한 이유. 지형적, 지리적 관문이 뚫리면 북으로 평양까지 남으로는 서울까지 단숨에 진격이 가능해해지니 김일성은 '오성산 사수'를 명령하는 거죠. 그만큼 평강시 일대, 오성산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은 오성산을 파파산(아버지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변에 오성산만큼 높은 산이 없기도 했고, 오성산만 확보하면 그 주변은 물론 평양까지 진격이 가능하기에, 미8군단과 국군, 북괴군, 중공군이 이 곳에서 피로 강물을 적신 치열한 전투를 43일간 벌였습니다. 주인이 33번 바꿨죠.

    오성산 탈취전에서 중공군 15,000명, 국군 5,000이 전사했다고 나옵니다. 그야말로 피로 물들인 능선이죠. 오성산(x1,040)과 맞보고 있는 우리 쪽 x471(성제산)과 백골OP(468m)는 Papa mt(아버지산)과 지형학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연상될 정도이니까요. 백골OP(468m)에서 10배 광학Zoom 디카 격인 200mm 망원경으로 오성산의 절벽 사면을 보면 갱도 진지에서 대포 구멍을 내밀고 있는 게 보입니다. 오성산 중턱 절벽을 깍아 만들었고, 인민군이 농구나 평행봉을 하는 모습도 보이니, DMZ(미무장지대) 남, 북 각 2km나 그 후방은 사실 전시 지역이나 마찬가지죠. 겨울에 찍은 구글 위성지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성산 사면 곳곳에 수 백문의 야포가 있습니다.

    구글 지도를 보듯이 오성산은 천혜의 요새라 西(서), 남서 쪽은 노출 100% 진입이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당연히 미군과 국군은 오성산 남쪽, 상대적으로 밋밋한 능선으로 고지 탈환을 위해 진격하게 되죠. 그 과장에서 저격라인에 일자로 노출, 중공군 저격수의 표적이 되어 많은 국군병사가 전사했습니다. 오성산 남쪽 능선이 그래서 저격능선이라 불리게 됐습니다. 한국동란 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가 금화(金化)지구 전투인데 중공군은 이를 '상간링 전투(上甘嶺 戰設)라고 부르죠. 저격능선 전투는 52년 10월14일~ 11월 24일까지 6주간에 걸쳐 42회의 백병전을 거듭하면서 능선 주인이 12차례나 바뀌는 처절한 전투입니다. 평양을 뺏기는 한이 있어도 오성산만은 포기할 수없다고 했을만큼 전략적으로 중요시하던 김화 동북방의 오성산(x1,040)으로 부터 철원 남쪽으로 이어진 능선에 위치한 580봉고지 돌출능선으로 오성산을 위협하는 데 필수적인 접근로 상의 요충지였죠. 이 전투에서 적군 사살 7600여 명, 포로 72명의 대전과를 올렸으며, 아군 피해도 전사 458명, 부상 1704명, 실종 22명이라 전투 규모를 가위 짐작할만 합니다. 포로협정(일괄과 병사 택일)에서 진전이 없는 52년 여름 이후 남.북 대치 상태, 휴지기에 중공군이 오성산을 점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포로교환이 되고 휴전협정을 앞두고, 미8군을 주축으로 연합군이 공세를 취함으로써 시작된 금화(金化)전투는 오성산(五聖山) 남쪽의 중공군 관할 지역을 회복하는 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남쪽으로 돌출된 전선을 뒤로 후퇴시킴으로써, 연합군의 방어를 좀더 개선하고 정치적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휴전 형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함이었지만, 결국 쌍방이 막대한 타격을 입는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는 전투가 되어버린 모양이 되었습니다. 밤 전투에 강한 중공군은 낮에 내어준 고지를 야간에 습격 다시 찾기를 반복하죠. 휴전협정이 조인되기까지, 43일 동안 오성산 아래 작은 봉우리들의 주인이 33번 바뀌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그 탈취전이 얼마나 쌍방 피튀기는 전쟁이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당시 백골사단은 북괴군에게 군기를 빼았겨 와신상담의 의미로 백골사단은 지금까지 군기가 없습니다. 43일 동안 33번 주인이 바뀌었다는 금화(金化)지구 전투가 안타깝게 오성산(x1040) 정상이 아니라, 오성산 밑 지능선 세 봉우리인데, 복기를 해보면, 세 봉우리 모두 국군의 수중에 들어왔다고 해도, 주봉인 오성산을 점령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시너지 효과가 없어서 효과가 반감되는 게 사실입니다. 쌍방 수 많은 인명이 원혼이 되어 떠다니는 걸 고려할 때, 유리한 자리에 서서 협상하고자한 의도는 알겠지만, 군인 역시 정치적이거나 야심이 앞설 때 총알받이로 국군 사병이 이용되는 현실을 직시해야겠죠. 오성산 능선이 1~3m 깍일 정도로 대단한 물량공세가 있던 것을 참작하면, 투자대비 효과는 거의 못 거두고 아까운 인명만 총알받이로 죽인 꼴입니다. 한치라도 땅따먹기 내땅을 더 확보하겠다는, 중공군, 북한군을 물리치겠다는 반공정신은 이해가 되지만, 오성산을 점령하고 평양까지 진격하겠다는 욕심?과 미8군 전투 지휘관의 능동적 판단에 애꿎은 생명이 버려진 현실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나면 사병은 장기의 졸(卒), 바둑의 바둑돌 한알 밖에 되지 않는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1,040m 고지 오성산 꼭대기에서 남쪽 성제산을 바라본 실제 모습입니다. Google Earth를 북한 오성산에서 성제산(x471)으로 돌렸으니까요. 코 앞의 작은 봉우리가 성제산(471m)과 백골OP(468m). 1,040m 고지에서 471m 내려다 보고 있으니, 개미 한마리 움직임도 다 포착될 판이이죠. 국군 OP 근무자가 혹 올려보느라 목이 아프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로 지형적 우위를 점하고 있네요. 52년으로 들어와 전투는 소강 상태에 들었고 포로협상 과정에서 서로 전열을 재정비하는 가운데, 휴전협정을 앞두고 벌어진 동.서부 전선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진 이유를 설명하는 재 조명하는 것도 한편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아버지, 삼촌들이 목숨 내걸고 싸워 지켜낸 덕분에 이런 좋은 세상에서 편하게 사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당시의 화기와 전투력으로 과연 오성산을 점령할 수 있었을까? 왜 인천상류작전처럼 오성산 뒤에 병력을 떨어뜨려 붕 뜨게하는 작전을 해볼 수는 없었을까? 휴전협정 당시는 서로 방어선을 만들고 바로 앞에 놓인 봉우리를 점령하는 고지전이 대세라 공수부대 낙하는 거의 개죽음 수준이었을 듯? 중공군 개입후 거의 초속기로 남하 퇴진만 하던 미군은 패잔병이라 불러도 괜찮은데, 그래도 리지웨이 장군이 새로 들어서 전열을 정비 진격에 나선 이후 이나마 한 것도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중공군의 개입은 거함 미국이라도 핵전쟁의 확산이나 장기전, 세계대전까지 확전을 의미하는 일이라, 트루먼으로서는 고지전 땅따먹기 선에서 휴전, 정전을 추진한 것이죠.

    수많은 영령들의 원혼이 떠도는 저격능선 아래로 노란 군사분계선이 지납니다. 비록 일제강점기이지만, 금강산전철의 노반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 DMA(비무장지대)이고요. 싸우면 이기는 게 상책이지만, 이기지 못하고 서로 많은 사람만 죽은 싸움이라 하지 못함만,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 한 게 아닌가? 바둑명인 임해봉은 돌다리를 2번 두들겨 보고 건너고 우리나라 바둑 대들보인 이창호 국수는 돌다리를 3번 두들겨 보고도 건너지 않는다는데, 사람의 생명을 재료로 삼는 전쟁에서 장수는 꼭 필요한 싸움인지 판단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 같습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제일이겠죠.

    지금도 오성산(x1,040)과 성제산(x471) 사이로 군사분계선(MDL)이 동해로 뻗어갑니다. MDL과 DMZ 나무 사이사이로 굵고 검은 현무암들이 더미를 이뤄 쌓여 있는 모습이 여기가 철의 삼각지(iron triangle) 철원, 평강, 김화라고 말해주죠. 이 넓은 철원, 김화 평야지대가 북한 오리산(x453)에서 분출된 용암으로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송대소'수직단애와 주상절리(柱狀節理), 한탄강 용암대지 현무암 수직절벽이나 철원, 연천, 포천, 파주에 구멍 송송 뚫린 현무암들이 모두 오리산(x453)에서 흘러내린 용암(마그마)의 작품이죠. 평강 주변에 무려 2억평에 걸쳐 용암대지를 만들었고, 훗날 철원평야가 되었고요, 그리고 추가령 구조곡 따라 마그마가 흘러 내려간 곳에 임진강, 한탄강이 생겼고, 후에 침식작용이 심하게 일었던 거죠. 용암대지 주변은 기(氣)가 센 곳인데, 구석기 인류 전곡리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살만한, 살기 좋은 환경이었나 봅니다. 1억 5천만년~ 3억 년 전에 형성된 기존 화강암 대지에 용암이 덮여서 한탄강 현무암은 형성되었는데 한반도에서 철원이 가장 젊은 땅이라는 것은 '오리산, 이 용암의 분출시기를 약 27만년 전으로 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30만년 전 오리산 화산폭발과 침식과정에 의해 한탄강이 생겨났으니, 북한의 평강에 있는 오리산은 어머니 격이죠 지금까지 연구결과 모두 11차례에 걸친 폭발로 인해 용암과 화산토가 철원과 연천평야를 덮어버린 것으로 조사되었고요. 눈, 비가 흘러 굳은 용암지대가 침식되고 부서지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강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종전 60년 아! 오성산!은 찰라 같은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이 한반도에서 가장 기가 세고 젊은 땅이라는데, 어찌해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가 이곳을 점령, 지난 60년간 인간의 발걸음을 거부하는 장소가 되었을까요? 휴전, 종전 60년이 지난 지금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MDL과 DMZ에는 천이가 진행되어 습지가 많아져 노루가 떼로 몰려와 목욕을 하곤 한다니, 노루 대신 우리가 산행을 하거나 휴가를 즐기는 공간이 되어야겠네요. 구(舊) 철원에서 출발했던 116.6km 금강산행 전철이 달렸던 시절처럼 앞으로 금강산으로 전철이 다니는 날을 꿈꿔보는 게 희망사항이 아니길 바라고, 철의 삼각지(iron triangle)의 모태인 열한(11)번 분출한 화산 오리산(x453) 답사도 기대해 보고요. 북한의 백봉에서 시작, 백암산~ 법수령~ 오성산을 지나 대성산으로 이어지며 한북정맥에 놓인 산이라 마루금 잇기 과정에서도 찾아야 될 산입니다. 평소 복계산에서만 보다가 김화 두물머리에서 천혜의 요새인 오성산 정면과 대하니 여러 감회가 남다르네요. ★ 김정은 제1위원장, 중부 최전선 오성산 시찰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6월 2일 중부전선 최전방 오성산을 지키고 있는 초소들과 인민군 제507군부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같은 날짜로 보도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특히 이번 시찰에서 군사분계선 350m 지점에 있는 '까칠봉'초소를 전격 방문했으며, 통신은 이를 두고 "우리 군대와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필승의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는 위대한 고무적 기치"라고 표현했다. 통신에 따르면 "적진까지의 거리는 불과 350m밖에 되지 않는 위험천만한 곳이어서 지휘관들은 절대로 그 곳에만은 나갈 수 없다"고 김 제1위원장을 만류했지만 "날새가 깃을 치는 소리마저 들리고 우리의 초소를 겨눈 적들의 총구가 육안으로 뚜렷이 보이는 곳, 이곳까지 몸소 나온 최고사령관 동지를 뜻밖에 보게 된 까칠봉초소의 군인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에 통신은 "최고사령관 동지를 우러러 목청껏 만세를 터치고 싶었지만 주고받는 말소리가 적초소에까지 들리는 너무도 위험천만한 곳이어서 군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만 흘렸다"고 묘사했다. 앞서 김 제1위원장은 한치만 잘못 밟으면 아찔한 천길 벼랑, 한줄기 바람에도 금시(금세)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바위들이 첩첩 둘러싸인 가파른 152굽이 험한 길을 올라 오성산 정점에 도착해 인민군 제549대연합부대장으로부터 영접보고를 받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후 김 제1위원장은 지난 1998년 8월 3일과 11월 10일 한 해에 두 차례나 오성산에 올랐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표식비를 돌아보고는 전방지휘소에 들러서 "최전연(전선)의 높고 낮은 산발들을 부감(副監)하면서 군부대의 방어전연(전선)에 대치하고 있는 적진과 적정을 구체적으로 청취하고 지형지물들을 상세히 요해(파악)했다고 한다. 연이어 김 제1위원장은 인민군 제785군부대의 감시소와 제565군부대 관하 1대대 3중대의 병실, 교양실, 식당을 돌아보았다. 까칠봉초소를 방문해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김 제1위원장은 인민군 제507군부대 지휘부를 시찰하고 부대의 임무수행 정형과 훈련실태에 대한 보고를 받고 "공화국 영웅 및 노력영웅을 25명 배출한 공로 있는 부대"라고 치하했다. 이번 시찰에는 김격식 인민군 총참모장과 박정천 인민군 육군상장, 안지용 인민군 육군중장, 최휘 노동당 제1부부장, 박태성 노동당 부부장이 동행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한편, 오성산은 군사분계선 상에서 남쪽 성제산과 마주하고 북한 평강시의 오른편에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철원-평강-김화를 일컫는 '철의 삼각지'의 중심에 있다.

 

▲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군 상송관리 장암산(1,052m, 長巖山) 남쪽 계곡에서 발원해 김화군의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 휴전선을 지나 화강(花江)과 만납니다.

▲ 동남(南東) 방향 직선거리 18.7km 광덕산(△1,046.3) Zoomin.

▲ 그림 가운데 벙커봉(약 533m) 능선 끝에서 화강(花江, 舊 남대천)과 한탄강이 합류합니다. 예전에는 여기도 민통선 권역이었다고.

▲ 벙커봉 우측으로 6.25 당시 미군들이 Papa봉으로 불렀던 오성산(x1040)입니다. 주위 산에 비해 압도적인 위용과 높이를 자랑하네요.

▲ 새벽에 내린 상서롭고 길한 눈은 이제 다 녹았습니다. 벙커봉 위로 보이는 하늘은 평화로운데, 바로 앞은 군사분계선이네요.

▲ 비행기의 월북(越北)이나 월경을 알려주는 월경방지표시판. 영어표기로 휴전협정 당시부터 존재. X30 Zoomin으로 확인불가

▲ '산에가면'님 준비한 △717(서방산) x689(두류봉) 별유봉(x380)이 나오는 김화 5만 도엽 복사본. 저는 산행 후에 5만지도를 샀다,
을지로 '프로카피'에서 통스캔 이후 동대문 대학천 상가 닭한마리집에 두고 왔더니, 지금 글 쓸 때 한눈에 보지 못해 약간 불편.

▲ 여기 벙커봉에도 H장 구실을 하는 공간이 있지만, 쇠꼬창이가 널려있어 헬기 착류은 어려워 보입니다.

▲ 서방산 717m에서 꽃히는 감시의 시선을 우리 OP가 받기에는 위치가 무척 차이 나더군요. 오성산 정도는 아니지만 철원 여기는 대체로 비슷.

▲ 벙커봉에서 바라 본 오성산(x1041). 인터넷에는 x1061로 회자되는 상황인데, 국립지리원 김화 5만 도엽은 x1040입니다.

▲ 오성산(x1040) 서쪽과 남서쪽은 진입불가죠. 은폐, 엄폐가 되지 않는 100% 노출되는 지형이라 이쪽 진입은 개죽음. 올 2012년 6월 2일 북한 김정은이 찾은 걸 보면 오성산이 우리나 북한에게 ';천하의 요새'로서 얼마나 중요한 산인지 실감이 납니다.

▲ 북한 오성산과 맞서는 군사분계선 아래 우리 DMZ의 대응은 성제산(x471)과 백골OP(468m)인데 지형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 x1,040 오성산 서쪽능선이나 골(Valley)은 진입불가라 6.25 당시에는 오성산 남쪽 경사가 완만한 저격능선으로 고지 탈환에 나섭니다.
일렬로 늘어선 군인들이 중공군의 저격병들에게 노출되어 떼로 죽음을 맞곤 했죠. 수 많은 장병이 죽은 곳이죠. 

▲ 다윗과 골리앗(거인)이 생각나는 대목. 북한 오성산과 군사분계선 우리 OP와 비교가 되나요?
사진 클릭하시면 2,000 X 1,124 픽섹의 큰 그림으로 골리앗을 대하는 다윗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여기 김화와 평강 일대에서 가장 높은 오성산(x1040)을 점령하면 평양까지 순항이기에 북한군과 중공군이 기를 쓰고 막아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고지죠. 김일성은 오성산 사수를 명령하면서 국방군 장교군번 트럭으로 가져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호언했다고?

▲ 북한 △717(서방산)에 맞서는 우리 OP.

▲ 북한 △717(서방산) x689(두류봉)에 맞서는 우리 쪽 OP의 지리적 불리가 느껴집니다. Red Line - 산행궤적.

▲ 우리 측 OP 뒤로 북한 x689(두류봉) 별유봉(x380)입니다. 두물머리 뒤로 북쪽 한탄강이 이어집니다.

▲ 한탄강은 발원점에서 장장 50km를 남한 쪽 한탄강 최상류인 화강(花江) 두물머리 까지 흐릅니다.
강원도 평강군 상송관리 장암산(1,052m) 남쪽 계곡에서 발원해 김화군과의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듭니다.

▲ x1,040 오성산의 코 밑에 있는, 대치하고 있는 우리측 OP와 승리전망대가 보이시는지요?

▲ △717(서방산), x689(두류봉), 별유봉(x380) 북한 OP와 대치하고 있는 우리 OP는 지정학적으로 열세에 있습니다.

▲ 서, 서남 방향은 진입이 어려워 6.25 당시에는 사진의 오른쪽 상대적으로 완만한 저격능선을 통해 진지점령이 있었죠.

▲ 마사토를 파서 혹 벙커를 만들었나? 긍금했죠. 뭐였더라? 기도처였나? 기억이 안 나는데요. ^^

▲ 휴전선에 펼쳐진 다른 전망대보다 고개들어보면 오성산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그 유명한 전말대가 승리전망대와 우리측 OP가 보이나요? 북한 백봉에서 시작, 백암산~ 법수령~ 오성산을 지나 대성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산이지만, 지금은 천혜의 요새 구실을 하는 북한 쪽 산입니다.

▲ 남한 쪽에서 보면 한탄강 최상류가 되는 두물머리입니다. 한탄강최상류란 파란 글자는 위로 옮겨져야 됩니다. 그 자리는 화강(花江).

▲ 군사분계선 각각 2km 구간은 무장하지 않는다는 휴전수칙에 따라 DMZ(비무장지대)로 설정되어 있지만, 북측의 위반으로 사실상 유명무실,
북측이 기존 철책을 MDL 쪽으로 앞당겼으니, 우리도 대응 차원에서 추진철책을 펴고 있으니까요. 두발 뻗고 자는 고마움이 생각납니다.

▲ 두물머리 능선분기봉에서 왼쪽, 오른쪽 약간의 갈등이 생깁니다. 안전을 위해 왼쪽, 군인 많이 다닌 곳을 택했죠. 이제 산행 끝.
하토동 두물머리가 산행 종료지점입니다. 도로가 좁고 비포장이라, 중토동 Taxi가 들어오는 곳까지 걸어 나갑니다.

▲ 두물머리 일대 화강(花江)에는 온통 지뢰 조심이라고 강조.

▲ 한탄강과 만나는 화강(花江) 쪽에 제방은 아니고 시설물(舊 다리)이 있어서 용기 있는 자 건널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 거대한, 장중, 압도적인 오성산을 보고 산행 쫑, 뒤돌아 하토- 중토- 상토동으로 가는 느낌은 가본 사람만 압니다. ^^

▲ 산에가자님이 부른 김화콜택시, xx회관으로 가서 뒤풀이를 할 예정입니다. 군인과 가족들이 사용하는 회관이죠.
지역기관장이고 이번 산행 안내자 역할해 주신 산에가자님 덕분에 여러가지 편의를 제공받게 되네요. 캄사. ^^

    ahimsa_Rachmaninov_VocaliseOp34_AlisonBalsom_Trumpet.wma Rachmaninov - Vocalise Op. 34 No. 14 라흐마니노프 / 보칼리제 - 앨리슨 발솜(트럼펫) 에드워드 가드너(cond), 괴텐부르크 심포니 Orch Alison Balsom trumpet Peter Reichert cond. Gothenburg Symphony Orch. 그라모폰의 평론가들과 거장 연주자들에 의해 내일의 클래식 스타로 선정된 미모의 트럼펫 연주자 앨리슨 발솜!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즉 자연스러운 능력, 누구라도 갖고 싶을 기교, 단호한 결단력, 트럼펫으로 부터 어떤 사나운 맹수도 길들일 수 있는 달콤한 소리를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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