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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제패했던 스페인 제국의 멸망을 재촉한 엘도라도 전설ㅣ 화강 2013/03/14 16: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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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며

 세계의 바다를 누비던 제국주의 국가 스페인 제국,

 어느 순간에 스페인 제국은 역사속에 사라지고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국만이 양대산맥으로 남아 주도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 특히나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의해 박살이 남으로써 보다 스페인 제국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런데 남미를 포함한 광활한 영토를 정복한 스페인 제국이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 데에 일조를 했던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끝없는 탐욕을 만천하에 보여준 결정적인 사건이었는데,

그것은 이미 영화나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나왔던 엘도라도 사건이다.

 엘도라도는 황금이 넘쳐난다는 황금향에 대한 전설로,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고 그곳을 찾아다녔다.

엘도라도는 에스파냐어에서 유래하는데,

'엘'은 정관사, '도라도'는 '황금의'라는 뜻이다. 엘도라도란 원래 '금가루를 칠한 인간'을 뜻하는 스페인어에서 나왔지만, 나중에는 '황금이 있는 곳' '황금의 나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메리카 정복에 나선 스페인의 모험가들은 아마존강과 오리노코강의 중간쯤에 이 황금향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당시에 다른 주장도 제기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마르코 폴로의 책인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 나오는 지팡구(일본)가 이에 해당한다.

 콜럼버스도 황금나라의 부(富)에 끌려 신세계를 발견하였고, 월터 롤리도 같은 이유에서 탐험을 하였다.

 남아메리카 토인의 전설에서는 구아타비타호(湖)라고 하는 호수 근처에 황금 지붕이 늘어서 있는 마노아라는 거리가 있어 이 곳에는 전신에 금가루를 칠한 왕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1529년 2월 24일, 야콥 푸거를 비롯한 상인들이 파견한 탐험대가 남아메리카에 도착한다.

이들은 전설에 나오는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나섰는데,

 원주민들의 공격과 전염병으로 가진 돈을 모두 잃고 돌아온다.

대주주인 야콥 푸거와 베슬러 가문은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 계속 사람을 보냈다.

또한 악명 높은 프란시스코 피사로(페루의 잉카 제국을 정복하고 리마 시를 건설했다)가 잉카 제국을 정복한 1530년대에 이미 엘도라도에 대한 소문이 콩키스타도르사이에 떠돌고 있었다. 실제로 1541년 피사로는 탐험대를 조직해 안데스 너머 현재 에콰도르 동부 지방까지 조사토록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최대 규모의 원정대를 이끌고 에콰도르의 키토를 떠났다.

340명의 스페인 사람들은 번쩍이는 갑옷과 색색의 비단으로 몸을 치장하고, 짐꾼 겸 정찰대를 맡은 인디언 4천 명과 돼지 4천 마리, 라마 수십 마리, 개 천여 마리와 함께 동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폭우와 같은 재난을 겪어 많은 손실을 보면서도 황금을 위해 전진, 또 전진했다.

파사로의 조카 곤사로가 대장을 맡았던 탐험대는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원주민들에게 압박을 가했는데,

 예컨대 인디언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황금의 도시의 위치를 물어봤다. 그들은 당연히 모른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을 일컫는 콩키스타도르는 그들이 알면서도 일부러 숨긴다고 생각하고 개에게 먹이로 주는 등 잔인하게 고문하고, 심지어는 학살까지 저질렀다.

그러한 끔찍한 이야기들이 인디언들 사이에서 퍼지자, 원주민들은 스페인의 정복자들인 콩키스타도르들이 기뻐할 만한 이야기들만 들려주게 되었다. 즉, 알지도 못하면서 이야기를 꾸며내어 최대한 그들을 멀리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엘도라도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져나갔다.

당시의 지도에는 구아타비타호의 위치가 암시되어 있다.

 황금의 왕에 관한 전설의 기원은 남아메리카 북부의 산악지대에서 산출되는 운모(雲母)의 가루일 것이라고 한다.

대항해 시대 당시, 많은 정복자가 엘도라도를 찾으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 때문에 학자들은 엘도라도에 대해 현지 인디언의 거짓말이 보태졌다고 결론을 내린다.

정복자에게 엘도라도를 모른다고 하면 마구 고문을 가했지만,

"어디어디 금은이 있고 어디어디 산호가 넘쳐난다."라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면 당장에 고문은 피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 그러나 잉카 제국은 피사로의 정복 당시 많은 금은을 소유하고 있었고, 남아메리카에서는 대항해 시대가 끝난 뒤 금광이 터졌다.

그 때문에 일부 사람은 "엘도라도는 실제로 존재했지만 대항해 시대 안에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16세기 초중반 스페인은 황금의 땅인 엘도라도를 찾아 남아메리카 정벌에 나섰다.

 세계인류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긴 잉카제국의 멸망과 황금의 대량약탈로 대변되는 엘도라도 원정은 이렇게 스페인에 의해 시작되었고, 비참한 말로가 이어졌다.

결국 콩키스타도르의 수색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후에도 탐험은 계속 이어졌다. 1559년에는 페드로 데 우르수아가 탐험대를 이끌고 엘도라도를 찾아나섰지만 부하였던 아기레에게 죽음을 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고, 1595년과 1616년에는 영국의 월터 롤리가 탐험에 나섰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물론 엘도라도 탐색은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아예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콩키스타도르의 탐험에 따라 나섰다가 혼자 대열에서 떨어진 프란시스코 데 오렐라나는 아마존 강 하류로 배를 타고 내려가 남미 대륙을 횡단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페드로 데 우르수아의 탐험대에서는 대장과 부대장을 살해하고 탐험대를 장악한 로페 데 아기레가 네그로 강에서 오리노코 강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통해 카리브 해에 도달하는 일도 있었다.

그 이후에도 300여 년 동안 수많은 탐험대가 황금빛 꿈을 안고 남아메리카 밀림으로 몰려들었지만, 역시 허사였다. 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욕망에서 시작된 엘도라도 원정은 스페인의 몰락을 가져왔다. 너도나도 황금을 찾으러 떠나는 바람에 마을은 텅텅 비는 경우가 속출했다. 17세기가 되자 스페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줄어들었다.

당시 마드리드의 인구가 40만명에서 15만명으로 격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농장은 폐허가 되고, 징병할 군인은 턱없이 부족해졌다.

 황금에 집착한 스페인과 스페인의 사람들의 말로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세계 최강으로 발돋움하던 스페인은 정상의 문턱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16세기 스페인의 황금열풍은 스페인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눈앞에 벌어진 혼란한 상황에 넋을 빼앗긴 시기인 1588년

 영국에게 해상주도권을 빼앗긴 스페인의 무적함대의 패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엘도라도는 유럽인의 오해에서 시작됐다.

신대륙에 대한 환상을 갖고 남미로 몰려든 15세기 말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 전통의식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신의 욕망을 보태 상상의 땅 엘도라도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스페인 정복자들이나 유럽인들만의 욕망의 산물이라거나 환상이 아니었다.

우리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환상이었다.

 또한 그러한 환상은 엘도라도의 황금전설이 전해지던

그 당시의 시대가 수백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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