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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가 5000원!”
“손님, 인터넷보다 싸요. 전 품목 5000원, 티셔츠는 한 장에 3000원. 보고 가세요.”
지난달 26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서울 최대 규모로 새로 단장하고 문을 연 날. 백화점 지하와 연결된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는 한 벌에 3000원짜리 옷을 파는 종업원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가게를 찾은 직장인 강성희 씨(36·여)는 니트 원피스와 블라우스 두 벌, 카디건 두 벌을 골랐다. 비닐봉지 한가득 담긴 옷 5벌의 가격은 2만1000원. 15년째 옷 장사를 하고 있는 종업원 박모 씨는 “손님들이 하도 싼 것만 찾다 보니 마진을 줄여서라도 싸게 파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가격파괴’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내에서도 3000원짜리 옷이나 1000원짜리 커피를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도 연중 할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의 이런 모습은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들어서는 전조(前兆)가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 “살아남자” 할인 몸부림… ‘90% 세일’에도 지갑은 꽁꽁 ▼
계속된 불황으로 100원이라도 더 싸게 팔려는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서울 홍익대 앞에는 500원으로 노래 2곡을 부를 수 있는 코인노래방도 등장했다. 1시간에 2000원만 내면 된다고 홍보하는 홍대 인근의 한 노래방 주변을 2일 오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달 29일 서울의 대표적 젊은이의 거리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주변. 화장품 가게 직원들이 추위도 잊은 채 반값 할인행사를 알리느라 분주했다. 한 집 건너 위치한 화장품 가게도 50% 할인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적힌 포스터를 빼곡히 내걸었다. 맞은편 술집에도 술과 안주를 반값에 판다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골목 끝 고기뷔페에는 ‘1만2900원 무한리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찬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짙어지는 디플레이션의 그림자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외식업계였다. 음식점과 커피전문점 등은 경기 침체로 좀처럼 열리지 않는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저가(低價)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가맹사업을 시작한 생과일주스 전문점 ‘쥬씨’는 지난해에만 전국에 200개의 가맹점을 냈다. 아메리카노는 1000원에, 딸기바나나주스 등 생과일만 넣고 갈아 만든 주스는 1500원에 판다. 한 끼 식사보다 비싼 커피값 앞에서 망설이던 고객들을 타깃으로 한 전략이었다. 쥬씨 홍대점에서 일하는 서진혁 씨(22)는 “주로 용돈이 궁한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며 “손님이 많은 날은 하루에 주스를 1000잔씩 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커피 내가 쏠게.”
2000원으로 친구와 함께 마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산 대학생 강민주 씨(23·여)는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스타벅스 같은 곳은 엄두도 낼 수 없다”며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1000원 한 장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커피값 가격파괴가 확산되면서 홍대 거리에는 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파는 커피숍까지 생겼다.
저가 음식점과 커피숍에 학생들만 몰리는 것은 아니었다. 탕수육 한 접시를 1500원에 파는 분식집 ‘허니돈’은 떡볶이나 350 mL 생맥주 한 잔도 모두 1500원에 판매하면서 인근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퇴근길에 들렀다는 직장인 박모 씨(30)는 “저녁을 사먹는 것도 부담돼 혼자 먹을 때는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닌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날 3000원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즐길거리에서도 가격파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500원에 노래 2곡, 1000원이면 노래 5곡을 부를 수 있는 ‘코인노래방’이 각광받고 있다. 노래방 기계에 직접 동전을 넣어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1시간에 1만∼2만 원을 내야 했던 기존 노래방보다 훨씬 싸다. 지난달 29일 오후 8시경 찾은 홍대 앞의 한 코인노래방에는 혼자 찾거나 서너 명이 함께 온 손님들로 가득했다. 6m²(약 1.8평) 남짓한 방 19개가 모두 들어차고도 20분 넘게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조금이라도 싼 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다이소 등 저가숍으로 몰린다. 다이소는 지난해 1조249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4년 매출 1조580억 원과 비교하면 20%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매장을 찾는 손님은 지난해 하루 평균 50만 명에서 올해 52만5000명으로 늘었다. 다이소 관계자는 “경제가 어렵고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오히려 저가숍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화점도 자존심을 버리고 연중 대규모 할인행사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매장을 벗어나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와 서울 세텍( SETEC)에서 모두 4차례에 걸쳐 의류와 가전제품, 완구 등의 이월상품을 80∼90% 할인 판매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예전에도 출장판매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여러 번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저가 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파괴 전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달 18일부터 소셜커머스와의 가격 경쟁을 선언한 이마트는 기저귀와 분유를 최저가로 판매한다고 광고 중이다. 기저귀와 분유는 온라인 쇼핑몰의 주력 상품인 데다 소비자들이 가격에 특히 민감해하는 상품으로 꼽힌다. 이마트가 하기스(매직팬티 대형) 기저귀를 장당 310원으로 정하자 소셜커머스 업체인 쿠팡도 같은 가격으로 낮추고, 이마트가 다시 308원으로 내리자 쿠팡이 305원으로 내리는 등 1원 단위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손님, 인터넷보다 싸요. 전 품목 5000원, 티셔츠는 한 장에 3000원. 보고 가세요.”
지난달 26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서울 최대 규모로 새로 단장하고 문을 연 날. 백화점 지하와 연결된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는 한 벌에 3000원짜리 옷을 파는 종업원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가게를 찾은 직장인 강성희 씨(36·여)는 니트 원피스와 블라우스 두 벌, 카디건 두 벌을 골랐다. 비닐봉지 한가득 담긴 옷 5벌의 가격은 2만1000원. 15년째 옷 장사를 하고 있는 종업원 박모 씨는 “손님들이 하도 싼 것만 찾다 보니 마진을 줄여서라도 싸게 파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가격파괴’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내에서도 3000원짜리 옷이나 1000원짜리 커피를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도 연중 할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의 이런 모습은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들어서는 전조(前兆)가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 “살아남자” 할인 몸부림… ‘90% 세일’에도 지갑은 꽁꽁 ▼
계속된 불황으로 100원이라도 더 싸게 팔려는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서울 홍익대 앞에는 500원으로 노래 2곡을 부를 수 있는 코인노래방도 등장했다. 1시간에 2000원만 내면 된다고 홍보하는 홍대 인근의 한 노래방 주변을 2일 오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달 29일 서울의 대표적 젊은이의 거리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주변. 화장품 가게 직원들이 추위도 잊은 채 반값 할인행사를 알리느라 분주했다. 한 집 건너 위치한 화장품 가게도 50% 할인이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적힌 포스터를 빼곡히 내걸었다. 맞은편 술집에도 술과 안주를 반값에 판다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골목 끝 고기뷔페에는 ‘1만2900원 무한리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찬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짙어지는 디플레이션의 그림자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외식업계였다. 음식점과 커피전문점 등은 경기 침체로 좀처럼 열리지 않는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저가(低價)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가맹사업을 시작한 생과일주스 전문점 ‘쥬씨’는 지난해에만 전국에 200개의 가맹점을 냈다. 아메리카노는 1000원에, 딸기바나나주스 등 생과일만 넣고 갈아 만든 주스는 1500원에 판다. 한 끼 식사보다 비싼 커피값 앞에서 망설이던 고객들을 타깃으로 한 전략이었다. 쥬씨 홍대점에서 일하는 서진혁 씨(22)는 “주로 용돈이 궁한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며 “손님이 많은 날은 하루에 주스를 1000잔씩 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커피 내가 쏠게.”
2000원으로 친구와 함께 마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산 대학생 강민주 씨(23·여)는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스타벅스 같은 곳은 엄두도 낼 수 없다”며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1000원 한 장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커피값 가격파괴가 확산되면서 홍대 거리에는 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파는 커피숍까지 생겼다.
저가 음식점과 커피숍에 학생들만 몰리는 것은 아니었다. 탕수육 한 접시를 1500원에 파는 분식집 ‘허니돈’은 떡볶이나 350 mL 생맥주 한 잔도 모두 1500원에 판매하면서 인근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퇴근길에 들렀다는 직장인 박모 씨(30)는 “저녁을 사먹는 것도 부담돼 혼자 먹을 때는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닌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날 3000원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즐길거리에서도 가격파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500원에 노래 2곡, 1000원이면 노래 5곡을 부를 수 있는 ‘코인노래방’이 각광받고 있다. 노래방 기계에 직접 동전을 넣어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1시간에 1만∼2만 원을 내야 했던 기존 노래방보다 훨씬 싸다. 지난달 29일 오후 8시경 찾은 홍대 앞의 한 코인노래방에는 혼자 찾거나 서너 명이 함께 온 손님들로 가득했다. 6m²(약 1.8평) 남짓한 방 19개가 모두 들어차고도 20분 넘게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조금이라도 싼 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다이소 등 저가숍으로 몰린다. 다이소는 지난해 1조249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4년 매출 1조580억 원과 비교하면 20%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매장을 찾는 손님은 지난해 하루 평균 50만 명에서 올해 52만5000명으로 늘었다. 다이소 관계자는 “경제가 어렵고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오히려 저가숍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화점도 자존심을 버리고 연중 대규모 할인행사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매장을 벗어나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와 서울 세텍( SETEC)에서 모두 4차례에 걸쳐 의류와 가전제품, 완구 등의 이월상품을 80∼90% 할인 판매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예전에도 출장판매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여러 번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저가 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파괴 전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달 18일부터 소셜커머스와의 가격 경쟁을 선언한 이마트는 기저귀와 분유를 최저가로 판매한다고 광고 중이다. 기저귀와 분유는 온라인 쇼핑몰의 주력 상품인 데다 소비자들이 가격에 특히 민감해하는 상품으로 꼽힌다. 이마트가 하기스(매직팬티 대형) 기저귀를 장당 310원으로 정하자 소셜커머스 업체인 쿠팡도 같은 가격으로 낮추고, 이마트가 다시 308원으로 내리자 쿠팡이 305원으로 내리는 등 1원 단위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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