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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에 찍힌 北 탱크·병력 규모 보고 깜짝… 주한 미군 빼려던 카터 마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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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55 2025/01/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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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미군 철수 추진’의 막전막후
당시 국무부 한국과장 리치 인터뷰

8일 카터 행정부 당시 미 국무부 한국 과장이었던 로버트 리치씨가 버지니아주 레스톤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워싱턴=박국희 특파원

8일 카터 행정부 당시 미 국무부 한국 과장이었던 로버트 리치씨가 버지니아주 레스톤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워싱턴=박국희 특파원
지난달 말 세상을 뜬 지미 카터는 주한 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었다. 1977년 취임하면서 4~5년 내 철수한다는 세부 계획도 세웠다. 1979년 6월 카터와 박정희 당시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은 양국 간 최악의 회담으로 기록됐다. 카터 행정부 당시 국무부 한국과장이었던 로버트 리치(95)는 지난 8일 버지니아(州) 자택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회담 당시) 박정희의 최우선 관심사는 미국의 확고한 군사 지원으로 북한의 침공을 막아내는 것이었고, 카터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아 주한 미군 철수로 박정희가 민주화 억압 기조를 완화하도록 압박하고 싶어했다”고 했다.

리치는 결국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 등과 함께 실무를 조율하며 카터를 설득해 주한미군 철수를 막아냈다. 카터는 생전 왜 주한 미군 철수에 집착했고, 그 계획을 결국 왜 접었을까. 리치는 “카터는 철수를 원했지만 북한에 대해 수집한 정보가 (철수를) 막았다”라고 했다.

-카터는 왜 주한 미군 철수를 공약했나.

“당시는 베트남전(1955~1975)이 막 끝난 때였다. 미국이 더는 먼 나라 문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다. 카터는 외교의 중심에 인권 문제를 놓고 싶어했다. 한국에는 긴급조치(반정부 활동 억압) 등의 사태가 있었고, 카터는 미국이 한국의 독재를 지원하는 식이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철수 공약이 결국 지켜지지 않은 이유는.

“카터는 개인적으론 여전히 미군을 철수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이 그런 결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의회와 국방부의 반대도 심했다. 그때 내 역할은 정부 내 다양한 정보를 분석해 대통령이 새로운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어떤 정보를 분석했나.

“당시 미국이 모든 정보 역량을 베트남전에 집중하느라 북한에서 일어나는 군사적 변화를 놓쳤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면서 군사력을 크게 증강했으며, 남침(南侵) 의도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카터가 북한의 군사력을 오판했다는 뜻인가.

“분석 인력이 모두 베트남전에 매달린 탓에 일어난 일이었다. 몇 년간 위성사진엔 북한 군사 동향이 찍혔지만 이를 제대로 분석하지를 않았다. 자료를 다시 살펴보니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탱크·차량·병력이 북한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처음엔 (1차로 분석을 맡은) 국방부가 정보를 과장해서 철수를 막으려는 의도 아닌가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중앙정보국(CIA)의 분석 결과도 같았다.”

-정보를 듣고 어떻게 했나.

“‘북한군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결론은 확실했다.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이 이에 따라 정부 차원의 새 조사를 지시했다. 그 조사를 내가 총괄해 북한의 병력 증강과 관련한 최종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당시 미국의 상·하원은 모두 카터가 소속된 민주당이 다수당을 점하고 있었다. 리치는 “그럼에도 민주당 내부에서 철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고, 공화당은 (주한미군 철수 오판을) 정치적으로 카터를 공격할 소재로 삼았다”고 했다. 카터는 결국 철수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카터가 세웠던 철수 계획은 무엇이었나.

“초기 계획은 주한미군이 무기를 한국에 넘기고 인력만 철수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무기를 넘기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의회 내에선 (철수에 회의적인 의원들이 적지 않아) 속도를 늦추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카터가 이를 수용했나.

“국내외 여건이 달라지면 2기 때 철수를 재추진하고 싶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재선에 실패했고 정권은 공화당으로 넘어갔다. 박정희는 암살(1979년)당했고 이후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오는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도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고 있는데.

“카터와 트럼프가 내세우는 명분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당시와 비슷한 기류는 있다. 미국 내에 ‘해외에 개입하지 말고 미국 내부 문제에 집중하자’는 고립주의 정서가 다시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능할지 나는 의문이지만 트럼프는 이를 부각하는 듯하다.”

-트럼프가 취임 후 철수 카드를 또 꺼낼 수 있을까.

“카터 때로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1970년대 한국은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과 비슷한 국방비를 썼다. 그럼에도 카터가 박정희를 만나러 가는 비행기에서 ‘한국이 국방비를 더 써야 한다’라고 뜬금없이 밝힌 적이 있다. 국내 여론을 의식해 내놓은 발언이었다. ‘내가 주한 미군을 철수하지 않는 대신, 한국이 방위비 부담을 늘리도록 했다’라고 나중에 말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본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의 언행엔) 정치적 계산이 들어가게 된다. 트럼프도 (주한 미군과 관련해) 비슷한 과정을 거칠 수 있다.”

-한국은 트럼프 2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트럼프는 외교부, 국방부, 정보기관 등 정부 조직의 보고 체계를 존중하지 않는 듯하다. 공식 외교 채널을 통해 양국의 의견을 조율하는 식이 아니라, 모든 사안을 사적(私的) 관계로 풀어가려 하다 보니 예측이 어렵다. 과거처럼 정상적인 외교 통로를 거쳐 미 대통령에게 로비하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 주재 대사관이나 한국 외교부도 체계적인 접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미국 내에서조차 ‘어떻게 해야 트럼프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난감해하는 분위기가 많다.”

-최근 한국의 정치 불안정에 대한 생각은.

“일단 정치 혼란이 빨리 수습되길 바란다. 60년 넘게 내가 지켜본 한국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런 힘이 있다고 믿는다. 뛰어난 인재도 많고, 역사가 깊으며, 경제 발전도 크게 이뤄냈다. 충분히 잘 해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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