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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에게 물려줄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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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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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47 2004/09/02 15:25

게시글 내용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내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아내의 남편입니다.
        명세서만 적힌 돈 없는 월급 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내 능력 부족으로 당신을 고생시킨다고
        말하며 겸연쩍어하는 아내의 무능력한 남편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가사일을
        도우며 내 피곤함을 감춥니다. 그래도 함께.
        살아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없는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요것 조것 조잘대는 막내의 물음에 만사를
        제쳐놓고대답부터 해야하고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큰놈들 때문에 뉴스 볼륨도 숨죽이며
        들어야합니다.

        막내의 눈 높이에 맞춰 놀이 동산도 가고
        큰놈들 학교 수행평가를 위해 자료도 찾고
        답사도 가야합니다.

        내 늘어진 어깨에 매달린 무거운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가 나를 옥죄어 와서 교복도
        얻어 입히며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생일날
        케이크 하나 꽃 한 송이 챙겨주지 못하고.
        초코파이에 쓰다만 몽땅 초에 촛불을 켜고
        박수만 크게 치는 아빠
        나는 그들을 위해 사는 아빠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어머님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어머님의 불효자식입니다.
        시골에 홀로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장거리
        전화 한 통화에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불쌍한 아들입니다.

        가까이 모시지 못하면서도 생활비도
        제대로 못 부쳐드리는 불효자식입니다.
        그 옛날 기름진 텃밭이 무성한 잡초밭으로
        변해 기력 쇠하신 당신 모습을 느끼며
        주말 한번 찾아 뵙는 것도 가족 눈치 먼저
        . 살펴야 하는 나는 당신 얼굴 주름살만 늘게
        하는 어머님의 못난 아들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40대 직장 (중견) 노동자입니다.
        월급 받고 사는 죄목으로 마음에도 없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도 삼켜야합니다.

        정의에 분노하는 젊은이들 감싸안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고개 끄떡이다가 고래 싸움에
        내 작은 새우 등 터질까 염려하며 목소리.
        낮추고 움츠리며 사는 고개 숙인 40대 남자.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집에서는 직장 일을 걱정하고
        직장에서는 가족 일을 염려하며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엉거주춤, 어정쩡, 유야무야한 모습.
        마이너스 통장은 한계로 치닫고 월급날은
        저 만큼 먼데 돈 쓸 곳은 늘어만 갑니다.
        포장마차 속에서 한 잔 술을 걸치다가
        뒷호주머니 카드만 많은 지갑 속의 없는 돈을
        헤아리는 내 모습을 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가장이 아닌 남편, 나는 어깨
        무거운 아빠,나는 어머님의 불효 자식
        나는 고개 숙인 40대 직장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껴안을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어도,
        그들이 있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나는 더욱 불행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행복입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일 때보다 더 행복한 줄
        아는 40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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