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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생재배와 인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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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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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443 2017/06/1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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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생재배와 인간사
 


  사과농원에 잡초관리를 위한 초생재배가 도입되었다. 처음 초생재배를 시작하니 말도 많고 비난도 넘쳤다. 사과원의 땅이 말끔해야 한다는 이치는 오랜 인습에 젖어있는 생각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초생재배는 농민들의 거부감을 부추기기에 흥미로운 일이다. 깨끗해야 할 땅에 잡초 풀을 가꾸어 놓고 농사를 짓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농민에게 원수 같은 잡초를 죽이지 않고 보호하는 일은 정신이 어떻게 잘못된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잡초가 사과나무가 필요로 하는 물도 흡수하고 비료도 적잖게 뺏어가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는 잡초 풀을 일정 기간 키워서 배어 버리니 벤 풀이 썩어서 녹비가 되어 오히려 도움이었다. 그래서 초생재배 이론의 설 자리를 만난다.


   이웃 농가에는 우리 사과원의 잡풀을 보고 비웃기도 하고 자기 같으면 저래놓고 잠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흉을 보았다. 특히 여자들이 수다스러워 자기 남편도 초생재배에 관심 둘까하여 더 시끄러웠다. 필자는 그 남자들을 마누라 겁이 나서 초생재배 못하면서 자기는 왕처럼 밖에 나와 떠든다고 나무랐다. 나는 초생재배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고 농약 살포도 줄일 수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일이 든 처음 시도하는 일에는 거부감이 있기 마련이다. 거기다가 원수 같은 잡초를 보호하는 일 같은 거꾸로 간다는 이웃들 생각은 설득력이 없어진다. 사람이 일생동안 믿어온 생각을 반대로 바꾸자면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일이 있어야 한다.


   처음 초생재배를 개발한 사람들은 농약을 적게 살포하기 위한 연구 중에 초생재배의 원리를 생각한 것이다. 사과원에는 응애라고 하는 해충이 번식력이 강해 농약을 개발하면 그 농약이 얼마 가지 않아 내성이 생기고 만다. 다시 다른 농약을 개발하면 응애의 농약에 대한 내성이 앞서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농약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뛰게마련이다. 그래서 응애의 습성을 연구했다. 응애는 잡초 가운데 부드러운 잎을 즐겨 흡즙한다. 사과나무 잎보다 잡초의 잎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잡초에서 즐기던 해충 응애는 잡초를 제초제로 죽여 버리니 갈 곳은 사과나무뿐이다. 필자가 사과원에 제초제를 친 뒤 살펴보니 나무를 받친 받침대에 표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응애가 달라붙어 기어오르고 있었다. 사과나무 잎을 빨기 위한 대 이동이다. 해충 응애 몸의 크기는 너무 작아 돋보기가 아니면 볼 수도 없다. 오직 받침대의 색깔만 기어오르는 응애 일색이었다.


   존재의 이치는 해충인 응애의 번식이 너무 왕성하여 먹이를 고갈시킬 때를 예방하기 위해 응애를 잡아먹는 이리응애가 발생한다. 이리응애는 응애와 모양이 비슷하게 생겼으나 크기가 3배는 크다. 응애의 천적 가운데 이리응애가 가장 응애를 많이 잡아먹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과나무에 올라가기 전 풀밭에 항시 거주하게 하여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치다. 풀밭에서 응애와 이리응애의 살기 죽기의 생태가 보호되어야 사과에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인간의 지혜다. 초생재배는 응애의 놀이 장소를 만들어주는 일종의 배려정신이다. 생태계의 순리에 따라 공생하는 원리를 이용한 농사기법이다. 그것도 모르고 처음 도입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주위의 시선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따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살충제 농약만 과신하면 응애의 천적인 이리응애 등 익충을 죽이는 일로 값비싼 신농약 선호의 계기를 만들었던 일이다.


   30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어느 정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초생재배지만, 인간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일이다. 존재물에 절대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절대 존재는 존재 자체가 없다는 일과 다르지 않아 이것이 바로 진리다. 절대 존재는 만물이 생기는 시초 직전의 상태라서 태허처럼 없다는 말로 표현함이 제대로 맞다. 사람은 털도 별로 없고 다른 짐승처럼 고기가 질기지도 않아 천적에게는 가장 입에 맞는 동물이었다. 사람의 수효가 늘어나니 천적인 호랑이 수효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러다가 사람이 멸종할 것 같으니까 사람은 지혜를 생각하기에 이르고 드디어 머리 쓰기의 시작이다. 자연발생 불을 사용하는 지식을 갖추기 시작하자 불을 만들게도 되었다. 그러면서 호랑이에게 당하는 천적의 관계를 영원히 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란 오만함을 갖기에 이르렀다.


   만물의 영장이 된 오만함이 극치를 넘게 되자 "태허의 생각은" 즉, 물질이 만들어지기 직전의 상태 생각은 인간을 가만두지 않을 것임은 틀림없는 생각이다. 그 생각은 거기에 대한 인간의 천적은 자동으로 다시 수정하게 되어있다. 인간의 천적은 호랑이도 아닌 바로 인간 자신이다. 어떤 방법으로 든 인간이 인간을 죽이게 된다. 다른 객체보다 더 많이 동종을 죽이는 동물이다. 칼로 죽이든 법으로 죽이든 전쟁으로 죽이든 환경오염으로 죽이든 오직 인간의 행위로 자멸하는 방법을 갖추기에 이미 정해진 진로로 가게 된다. 여기에 좋은 약으로 많은 방편이 이리응애 발생처럼 나오지만 효과는 글쎄다. 누가 무슨 에너지가 홀연히 나타나서 이 거대한 진리의 흐름을 거역할 수 있을까? 오만방자한 인간 심리가 좋은 말씀을 귀담아들을 줄을 알 것인가? 아마 그랬다면 탄핵 같은 터무니 없는 말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글 : "태허의 생각" 저자 박용 )
  http://greenwon.net/태허의생각/목차.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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